고제희의 풍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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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 고찰(이기론)

  이기론이 한국 풍수학에서 차지한 비중은 사뭇 대단하였다. 조선의 도읍지가 신도안에서 서울로 바뀌게 된 배경에도 이기론이 있었다. 조선을 창국한 이성계는 기운이 쇠약해진 개성에서 다른 곳으로 도읍지를 옮기려고 마음먹었다. 그러자 권중화(權仲和)가 계룡산 아래의 신도안 터를 답사하고는 그곳의 지형을 그림으로 그려 바쳤다. 무학 대사와 함께 신도안을 직접 찾아간 이성계는 길지란 생각이 들어, 새로운 궁궐을 짖도록 하였다. 그런데 1년을 조금 넘게 공사를 했을 때 갑자기 하륜(河崙)이 공사를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도읍은 마땅히 나라의 중앙에 있어야 될 것인데, 계룡산은 남쪽에 치우쳐서 동면·서면·북면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또 본인의 아버지를 장사지내면서 여러 풍수책을 열람했는데, 계룡산의 땅은 산은 건방(乾方)에서 오고, 물은 손방(巽方)으로 흘러가니, 이것은 송나라 호순신(胡舜申)에 따르면 '물이 장생(長生)을 파(破)하여 쇠패(衰敗)가 곧 닥치는 땅'임으로 도읍을 건설하는데 적당하지 못합니다.〉

  이성계는 곧 고려 왕조의 여러 릉의 길흉을 호순신의 이론에 맞추어 조사하라고 명령하였다. 명령에 따라 고려의 모든 릉이 들어선 터의 산세와 물이 오고감을 조사한 결과, 후손들의 길흉이 모두 딱 들어맞았다. 그러자 그 정확성에 크게 놀란 이성계는 심효생을 계룡산에 보내어 새 도읍의 공사를 그만두게 하고, 하륜에게는 서운관에 보관된 풍수책을 모두 열람하게 한 다음 새 도읍지를 찾아보도록 하였다. 그 결과로 한양이 조선의 도읍지로 선택되었다. 이 후로 호순신의 풍수론은 조선조를 걸쳐 지관을 선발하는 음양과의 시험 과목으로 일괄되게 채택되었다.

  호순신의 이론에 따라, 상기의 글을 해석해 보면 신도안의 땅은 오행으로 수국(水局)이고, 이때 건해방(乾亥方)에서 산자락이 뻗어 왔으니 땅의 기운은 12포태상 목욕룡(沐浴龍)에 해당된다. 목욕룡의 땅기운은 수맥이 흐르거나 물이 가득 찬 땅으로 도읍지로는 적당치 못하다. 이런 곳에 묘를 쓴다면 봉분에는 이끼와 쑥대가 가득히 자라고, 집을 지으면 벽에 금이 가거나 지반이 침하되고 심하면 집이 쓰러지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또한 이기론 풍수는 단순히 묏자리를 잡는 방법에 그치지 않고 도읍지를 정하거나 일상 생활에서 집터를 정하거나 대문을 내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용되었음이 「조선왕조실록」에 전한다.

  <인조 9년에 권대진이란 사람이 반란을 계획했는데, 거사에 앞서 그는 지관으로 하여금 한양의 궁궐 터를 감정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궁궐은 풍수적으로 길지일 뿐만 아니라, 왕기(王氣)조차도 쇠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거사를 뒤로 미룬 채 계룡산으로 내려가 패철을 이용해 새 도읍지를 정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역모가 사전에 발각되어 죽음을 당했다.>

  숙종 16년에는 남서방에 대문을 새로 설치하는 문제가 생겼다. 이에 대하여 <손방· 사방에 문을 내면 집이 이롭지 않다는 말이 있다. 나라의 도성은 사가(私家)의 집과 다르기는 하나, 지관에게 물어 그 방위를 알고 난 다음에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진 : 신도안/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중에서>




원리(이기론)

현대적 응용 가능성(이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