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희의 풍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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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배동/고급빌라…빼어난 풍광…


[고제희의 풍수기행]-소가 누운듯한 臥牛形 큰 인물ㆍ부자 배출 터

    뒤쪽에 산이 있고 앞쪽에 넓은 들이나 강을 접한 지형을 배산임수(背山 臨水)라 부르는데, 예로부터 마을이 들어설 최적의 조건으로 삼았다. 배산은 마을 뒤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고, 임수는 양호한 일조량을 얻게 하며, 근수(近水)는 수운 교통과 관개용수 그리고 물고기까지 얻을 수 있다. 또 완만한 경사도는 풍수해를 피하고, 숲은 물과 흙을 보호하 면서 미기후를 조절하며, 과수와 경제림은 경제적인 소득과 연료를 제공 해 살기 좋은 터가 된다. 풍수적으로 관찰할 때 방배동이 부자 마을이 된 것은 우면산의 정기가 지맥을 타고 전달됨으로써 소가 누어 있는 '와우형(臥牛形)'의 명당이기 때문이다. 와우형은 곡초가 쌓인 듯한 적초안(積草案)을 안산으로 삼는 데, 소는 성질이 유순하고 누워서 음식을 먹는다. 따라서 와우형의 터는 큰 인물이 배출되고 자손 대대로 누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큰 부자가 배출될 터이다.

    하지만 방배동이 풍수지리적으로 허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와우형의 터가 발복하려면 풀숲을 쌓아놓은 듯한 동산이 필요한데 , 지금은 여러 동산이 주택지로 개발돼 형체조차 없어졌다. 그 결과 배 가 고픈 소는 힘을 쓰기 어렵고, 북쪽으로 흐르는 한강은 방배동을 둥글 게 감싸지 못하고 마치 등진 채 흐르는 반궁수(反弓水)이다. 반궁수는 혈장을 외면하는 물로, 객지로 떠돌거나, 음란하고 도적이 생겨 재산을 잃는다고 한다. 따라서 지덕(地德)을 회복시키고 반궁수의 피해를 줄이려면 작은 공간이라도 숲 공원을많이 조성해 지지가 발동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박인호의 현장르포]-16만평 공원 특급조망권, 저명인사 많아 "강남의 평창동"


    주 프랑스인 절반 살아 옛 대우그룹 영빈관도 이곳에
    서울 방배4동 함지박사거리에서 동광로를 따라 걷다보면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다. 심하다 싶을 정도의 경사를 오르다보면 부촌이 아닌 '달동네를 찾아가 는 것 아닌가'하는 착각이 든다. 아득한 언덕에 이르면 쉬고 싶은 생각 이 절로 든다. 바로 그때쯤 꼭꼭 숨겨져 있던 마을이 나타난다. 이름도 예쁜 '서래마을', 시야를 가리지 않는 낮은 주택과 인적이 드문 거리 가 한눈에 들어온다. 거리 곳곳에는 한국어와 프랑스어를 동시에 사용한 간판이 즐비하다. 이국적인 느낌에 취할 때쯤 전형적인 시골의 상쾌한 공기와 풀냄새가 몸을 감싼다. '서울시내에 이런 곳이 있다니….' 서 래마을의 첫 인상이다.

    방배본동과 반포4동 경계에 위치한 서래마을. 서래마을이란 명칭은 마 을 앞 개울이 서리서리 구비쳐 흐른다고 해서 붙여졌다. 서래마을의 일 부를 점하고 있는 방배동은 우면산을 등지고 있는 동리라 하여 '방배( 方背)'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방배라는 이름 때문일까. 서래마을 곳곳 에는 '우면산 지키기'에 앞장선 주민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한국 판 '내셔널 트러스트'운동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이곳 주민들이 지역지키기에 앞장서게 된 배경에는 예로부터 이어져온 경제적 여유도 한몫했다. '서래마을 주민이 없으면 한양은행은 모두 망한다'는 속설이 전해질 정도로 이곳은 돈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서래마 을에 20년 이상 살았다는 김인식 씨는 "해방을 맞았을 때도 서래마을 주민들은 고급 채소를 전국에 공급하면서 경제적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고 말했다. 서래마을은 원래 반포에 살던 주민들이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수해 를 입고 이주해 오며 생겨났다.

    장마철만 되면 한강이 범람하자 높은 지 대를 찾아나선 이들의 삶터가 서래마을이었던 원래 야산이었던 서래 마을은 강남 개발이 본격화될 때도 옛모습을 고집스레 지켰다. 서래마을 옆구리에 위치한 16만평의 서리풀공원은 서래마을 주민들의 고집을 증거 하는 자취다. 그러나 1986년 효성빌라가 들어서면서 서래마을은 고급 빌라촌으로 거 듭난다. 효성빌라 이후 고급 빌라가 잇따라 건립되며 이곳은 신흥부촌이 된다. 150평짜리 베버리힐스빌라는 25억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바로 옆 노블리티빌라(170평) 역시 시세가 25억원 선이다. 특히 서래마을 인근의 반포4동은'전국에서 가구당 연평균 소득이 가장 높은 동'으로 꼽히기도 했다.

    마케팅 전문기업 타스테크가 지난 7월 전국 4만명을 대상으로 소득수준을 조사한 결과, 반포4동은 평균 6080만 원의 연소득을 자랑하며 1위에 꼽혔다. 또 방배본동 역시 소득수준 10위에 들었다. 최근에는 서리풀공원을 둘러싼 방배4동이 방배동을 대표하는 부촌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서리풀공원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특급 조망권'을 살린 고급 아파트가 공원을 에워싸며 건립되고 있다. 이들 아파트는 먼 저 들어선 고급 빌라와 함께 서리풀공원 일대의 부동산가격을 올리는 주 체가 되고 있다. 고급 빌라 시세가 평균 10억원 이상이다 보니 방배동 사람들 중에는 이 름만 들으면 알 만한 인사들이 많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을 비롯해 박 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 윤세영 SBS 회장, 박문덕 하이트맥주 회장, 김 영수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 김동진 현대자동차 사장이 살고 있다. 장문영 이건산업 부회장, 정보근 전 한보그룹 회장도 이곳 주민이다. 장재구 한국일보 사장과 김경준 목동병원 원장은 빌라재건축 때문에 잠시 떠나 있는 상태다. 재계인사뿐만이 아니다. 김영일, 김택기, 임인배, 이사철, 김동구 의원 을 비롯해 조영길 국방부 장관, 신국환 전 산업자원부 장관, 김종구 전 법무부 장관, 이진삼 전 체육부 장관, 한주석 전 공군참모 총장 등 일일 이 헤아릴 수 없다. 방배동이 정계와 재계가 어울려 사는 '강남의 평창 동'으로 불리는 이유다. 방배동은 연예인들의 삶터이기도 하다. 가수 조용필 이미자 신승훈 임 백천을 비롯해 영화배우 최민수 강석우 김정은 주진모 하지원, 탤런트 김수미 최수종 김영란이 살고 있다. 영화배우 이미연과 이미숙도 얼마 전까지 방배동 주민이었다. 지난 4월 법원경매를 통해 매각된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집 역시 방배동에 위치하고 있다. 48억원에 매각된 이 집은 대우그룹의 영빈관으로 불렸다. 재계 총수들의 방배동시대를 열었을 뿐 아니라 각국 원수와 장 관을 접대하며 70~80년대 '수출드라이브'의 현대사를 장식한 곳이다. 전 회장은 큰 아들 묘가 있던 안산농장과 방배동자택에 대해 끝까지 애착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99년 대우그룹 자구책으로 전 재산을 금 융권에 내놓겠다고 하면서도 그는 두 곳은 빼놓았다. 현재는 김 전 회장 의 아들 선협 씨가 인근 빌라에 살고 있다.

    방배동에는 저명인사들이 모여살고 있으나 교류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방배동 3초소 방범반장인 최종학 씨는 "70년대에는 서울막 걸리 대표였던 고(故) 유지택 사장, 태화고무 사위였던 김순종 씨로 구 성된 로터리클럽이 명성을 떨쳤으나 현재는 대부분 흩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프랑스인들도 방배동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85년 프랑스대사관 학교가 방배동에 들어서면서 '프랑스타운'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반포 4동 윤복영 동장은 "모국의 문화를 자녀에게 가르치려는 프랑스인이 속 속 이사오면서 한국에 거주하는 프랑스인의 절반 정도가 이곳에 산다" 고 말했다. 외국인이 많이 살다보니 '부동산 렌트'가 이 지역의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공실률이 높아 임대수익률은 그다지 높지 않으나 외국인 에게 인기가 있는 슈퍼빌 같은 곳은 수익률이 꽤 짭짤하다. 최고경영자 (CEO)급은 월 1000만원 선, 일반 직원의 경우 300만~400만원의 월세를 지불하는 게 통례. 그러나 코아셋KS부동산 박성훈 과장은 "최근 까르푸가 인원을 40% 감 원하면서 렌터사업이 예전만 못하다"고 전했다.곽세연 기자(ksyeon@heraldm.com)


[대표적 문화시설]-카페촌ㆍ먹자골목 번창…프랑스 거리선 유럽의 향기가

    "방배동 사모님이 전화하셨습니다." TV연속극을 보면 방배동은 언제나 고상하고 돈 많은 사모님들이 사는 부촌으로 그려진다. 최근 들어 신흥 부촌이 앞다퉈 부상하고 있지만 방배동은 여전히 고급 동네의 상징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처음 만난 상대가 '방배동에 산다'며 어깨를 으쓱대도 시비 걸 사람이 없을 정도로 방배동은 명실상부한 부촌인 셈. 그러나 방배동에는 그 명성과는 달리 이렇다 할 문화명소는 없다. 미술관이나 화랑, 공연장이 아쉽게도 없는 것. 대신 소비와 환락의 상징인 카페촌과 먹자골목이 창궐하고 있다. 물론 '프랑스 거리'가 형성돼 이국적인 유럽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지만 방배동은 '카페와 식도락'의 위세가 대단하다. 방배동 카페촌의 대표주자는 1976년부터 한자리를 지켜온 레스토랑'장미의 숲'. 80년대 방배동을 '최고의 카페촌'으로 부상케 한 간판 주자이다.

    방배동 카페촌 대표주자 장미의 숲. 1979년부터 줄곧 자리를 지켜온 이곳은 여성고객에게 붉은 장미한 송이를 건네는 서비스와 파격적인 인테리어로 화제를 뿌렸다. 이 양식당은 여성고객에게 붉은 장미 한 송이를 건네는 서비스와 유명아티스트의 입체작품을 천장에 매다는 등 당시로선 파격적인 인테리어 때문에 더 화제를 뿌렸다. 게다가 소설가 김주영, 성악가 박인수, 가수김수철, 화가 김병종, 만화가 고우영, 배우 이영하 같은 유명인사가 수시로 드나들기도 했다. 요즘도 이곳에는 옛 추억을 되새기려는 중년층의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김상훈 대표는 "'아직도 건재하느냐'며 반색하는 고객들이 많다"며"우리도 오래 된 레스토랑을 하나쯤 가져야 할 때 아니냐"고 반문했다. '멋장이 카페'들로 명성을 날렸던 방배동은 청담동에 그 명성을 내준대신 요즘은 먹자골목으로 유명하다. 이 일대는 아구찜을 전문으로 하는식당이 많다. 때문에 퇴근 후 한잔 걸치려는 30, 40대 직장인들을 자주볼 수 있다. 또 근래에는 새롭게 치장한 소규모카페들도 하나둘 생겨나며 먹자골목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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