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희의 풍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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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계동사옥 - 내외경제신문 11월 29일자

'현대가(現代家)의 법통을 계승할 장자(長子)가 되려면 계동에 위치한 현대 사옥에 입성하라.' 1983년에 준공된 계동 사옥은 지상 14층의 본관과 8층의 별관이 '┛' 자 형태로 구성된 현대식 건물이다. 이 빌딩은 단순히 오피스빌딩의 차원을 넘어 현대그룹의 자존심을 상징해 왔다.

본관 건물의 15층에는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의 집무실이 있어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또 사옥 앞쪽에는 그룹의 얼굴로 상징되던 '現代 '라고 쓴 큼직한 표석이 세워져 있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대의 총본산임을 자임할 정도로 20년 동안 현대그룹과 영욕을 함께 해 온 건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현대 사람들은 이 건물을 가리켜 '현대의 영광을 대변하는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그런 애정으로 인해 현대건설이 유동성 위기에 빠져 자구책을 발표할 때도 이 빌딩의 매각만큼은 막판까지 미루어졌었다.

현대그룹이 오늘날과 같이 국내 굴지의 재벌 기업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두 개의 헤드쿼터가 있다. 하나는 1970~80년대에 중동 건설신화를 꿈꾸며 현대를 재계 1위의 재벌로 도약시킨 광화문 사옥이 있고, 또 하나는 재계의 선두자리를 지킨 채 국토 확장과 대통령 선거 출마, 그리고 금강산 사업과 같은 현대사에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계동 사옥이 그것인데, 특히 계동 사옥이 자리한 땅은 조선 초부터 명당이라고 대단히 주목받던 터였다.

세종 때의 최양선(崔揚善)은 창덕궁 서쪽에 천하의 명당이 있다고 하면서, 이궁(離宮)인 창덕궁을 그쪽으로 옮겨야만 나라가 만대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주맥이 씩씩한 채 잡스런 기운이 없다. 내룡이 벌의 허리와 학의 무릎 같은 형세로 의젓하게 들어오다 둥근 언덕처럼 우뚝 솟아났다. 삼각산이 하늘을 치받아 우람히 뭉치고 그 기운이 남쪽으로 맹렬히 달려와 작은 형상을 맺었으니, 명당 중에 명당이다." 조선시대에 이곳에는 외교문서를 관리하던 승문원과 천문을 관측하던 관상감이 있었는데, 창덕궁의 주맥인 응봉의 지기가 창덕궁을 비껴나 이곳에 응집됐다는 주장이었다. 승문원은 광화방에 소속되었는데, 같은 광화방에 속하며 관상감이 있었던 자리가 바로 지금의 계동 사옥 자리다.

세종은 최양선의 주장에 대해 약간의 흠을 잡았지만, 결코 보통의 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론(世論)에 따라 창덕궁 이전은 종지부를 찍었다.

이곳은 주산인 응봉이 매를 닮았으니, 꿩이 매의 공격을 피해 납작 엎드린 복치혈(伏雉穴)의 형국에 해당한다. 매의 공격에 쫓겨서 다급해지면 꿩은 엉덩이는 바깥으로 내놓은 채 머리만 풀숲에 박고 '나 없다' 하는 식으로 위험을 모면하려고 한다. 이때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면서 긴장이 조성되는데, 그 긴장이 지기의 발동을 불러 복덕(福德)을 가져다 준다.

그렇지만 머리만 풀숲에 박고 자기 눈에만 매가 보이지 않는다고, 매가 꿩의 엉덩이를 못 볼 리 없다. 곧 매가 발톱을 곧추 세운 후 꿩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낚아 채 잡아먹을 것이 뻔하다. 이처럼 복치혈의 터는 몸을 숨기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에 드러내 놓아야 하는 모험과 도전 정신이 끊임없이 요구되는 기업의 터로는 부족하고, 긴장감 속에 좀더 안전하게 숨어 매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은신과 공부에 적합한 학자들의 터로 쓰여야 제격이다. 조선시대 승문원과 관상감, 근대에는 민족 교육의 산실인 휘문학교가 있었던 점 모두는 땅을 지기의 성격과 맞게 이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또한 현대 계동 사옥은 가상(家相) 면에서도 기업가 정신이 발휘될 여건이 현재 리모델링 공사 중인 광화문 사옥에 미치지 못한다. 도로를 향한 앞 면의 폭은 넓은데, 안으로의 깊이는 얄팍한 소위 길쭉한 집이어서, 번창할 기운은 있으나 오래 가지는 못할 상이다. 또 주산인 응봉의 형상이 물결 모양의 수성(水星)인데 건물 지붕은 평평한 토성(土星)으로 삼았다. 토극수(土剋水)로서 산 기운이 길하게 전달되지 못한다. 따라서 나무 식재와 조형물을 제 방위에 설치하는 비보적 지혜를 기울여야만 가상의 흉함이 차단될 것이다.

정 회장은 계동 본사를 포함한 계열사 사옥 및 중앙병원에 이르기까지 최상층의 창문만큼은 아치 형태로 디자인하였다. 그것은 관공서 건물의 외벽을 미색으로 장식했던 육영수 여사나, 사옥의 외벽 마감을 주로 붉은 화강암으로 통일했던 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의 취향과도 비견되는 현대만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다. 학식은 없지만 그 대신 남보다 더 열심히 생각하는 머리와, 치밀한 계산 능력을 가졌던 정 회장이 우리 고유의 무지개 다리에서 영감을 얻어 건축 설계에 반영한 그만의 멋이었다.

여기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선녀의 자태를 형상화한 아치형 창문은 이 터가 가진 최고의 약점 즉 안산인 남산이 높게 바라다 보이는 압혈(壓穴 )의 흠을 보듬어 주기에 안성맞춤이라 길한다. 왜냐하면 무지개 같은 둥근 모양의 금기(金氣)는 혈장의 기를 누르는 남산의 목기(木氣)를 제압해 방살(放殺)하기 때문이다.

현대 계동사옥은 현대 그룹의 계열사와 조직, 그리고 임직원이 급속히 팽창하던 80년대 초반에 경영효율과 비용 절감을 위해 새로 지은 사옥이며, '現代'라는 상징석 뒷면에는 현대건설의 역사가 간략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현대건설이 현대그룹의 좌장임을 은연 중에 암시한 것이었으나, 이 상징석은 '왕자의 난'이라 불리는 창업주 아들 간의 권력 다툼의 와중에서 19년 만에 제거돼 사라졌고, 현대건설의 녹색 삼각형 사기(社旗) 역시 이제는 별관으로 밀려나고, 본관의 게양대에는 새 주인인 현대자동차의 깃발이 힘차게 나부낀다.

일본 기업의 평균 수명이 30년이고, 한국 기업의 평균 수명이 16년 안팎이라 한다. 묻은 뒤 고작 10년 만인 2009년에 개봉토록 일정이 잡혀진 본관 뒤뜰에 있는 현대 타임캡슐을 바라보니, 기업의 영욕이란 한여름밤의 꿈 같음을 새삼 실감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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