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희의 풍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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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자동차 - 내외경제신문 11월 22일자

자동차는 2만여개의 부품이 결합돼야만 제 기능을 발휘하는 현대 문명의 총화이고, 또 한 나라 산업기술의 수준을 가늠하는 시금석과도 같다. 자동차를 생산해 수출하는 국가라면 항공기도 생산할 수 있는 나라로 평가받으며, 그 결과 해외시장에서 다른 상품들까지 덩달아 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동차는 한 나라의 자본과 기술 수준을 알려주는 국가 이미지의 척도로 간주돼 '달리는 국기(國旗)'라 불린다.

현대그룹이 오늘날과 같이 한국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자동차 수리업을 필두로 사업을 해온 창립 배경과,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1915~2001년)의 자동차와의 인연 때문이다. 일제시대에 ‘아도서비스’란 자동차 수리업을 통해 자동차를 알게 된 정 회장은 사업 규모가 큰 건설업에 전념할 때도 머리 속에는 자동차란 단어가 늘 새겨져 있었다.

마침내 1967년 현대자동차를 설립한 정 회장은 포드사와 자동차 조립 기술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오랜 숙원이던 자동차산업에 진출했고, 자동차 생산을 위한 공장 부지로는 울산이 낙점됐다.

1966년 특정공업지역으로 고시된 울산은 공장용지의 매입과 용수 조달이 용이한 이점이 있고, 또 수출을 위한 항만시설 같은 사회간접자본이 이미 갖춰져 있어 최적지로 떠올랐다. 또 다른 이유는 당시에 현대건설은 펄프공장을 짓고자 15만평에 이르는 염포만을 매립하던 중이었다. 장차 이 매립지를 자동차 부지로 용도를 변경해 활용하겠다는 정 회장의 단안이 있어 결국 울산이 현대자동차의 요람으로 정해진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사업은 부지 매입부터 온갖 시련에 휘말렸다. 현대자동차가 땅을 매입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평당 180원 하던 땅값이 하루 아침에 몇 배로 뛰어올라 결국은 870원에 매입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마을의 동신(洞神)을 모신 당집을 뒷산으로 옮겨서 지어 주고, 마을의 수호신이라 여기던 600년 된 미루나무도 무당을 불러 굿을 한 후에야 베어 냈을 정도이다.

토목공사 역시 어려움이 많았다. 바다와 저수지를 메운 늪 부지를 1m 높이로 성토해 메웠으나 자연침하가 일어나 파일을 수없이 박았고, 불균등 침하가 일어난 슬래브 바닥은 기계설치 후에도 파일 시공을 다시 한 경우까지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시련에도 불구하고 현대자동차가 들어선 양정마을과 앞 바다는 자동차와 서로 궁합이 잘 맞는 땅이며, 오래 전부터 대성할 기운이 점지된 곳이었다.

백두대간의 태백산에서 분기한 낙동정맥은 동해안을 따라 울진의 백암산과 청송의 주왕상, 그리고 부산의 금정산으로 이어지며, 단석산을 지난 정맥은 가지산을 못 미쳐 동진하는 기맥을 출맥시켰다. 치슬령까지 동진한 기맥은 치슬령에서 남북으로 분기하고, 남쪽 기맥은 동대산 무룡산을 거쳐 가운데 고개를 지나더니 다시 태화강을 따라 남동진한 후에 동해를 만나 전진을 멈추었다. 그러므로 현대자동차의 본 생산라인이 위치한 양정마을은 가운데 고개에서 태화강을 따라 남동진하던 용맥에서 한 기맥이 양정천을 따라 남서진하고, 이 용맥이 다시 늪가로 형성된 명촌천을 만나 지기를 응집한 곳이다.

따라서 이 터의 태조산은 태백산이고 중조산이 단석산이고 무룡산이 소조산이며, 태화강을 건너 돗질산을 안산으로 맞이했다.

풍수에서는 배가 안전히 정박했다 출항하는 형국을 ‘행주형’(行舟形 )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안산인 ‘돗질산’은 영락없이 돛대에 매달린 삼각형 모양의 돛처럼 보이고, 산 이름의 ‘돗’ 역시 ‘돛’의 경상도 방언이고, ‘질다’는 ‘달다’의 방언이니 결국 ‘돗질산’은 ‘돛달산 ’이란 뜻다. 그런데 행주형은 주변에 키 돛대 닻을 모두 구비해야 사람 과 재화가 풍성이 모여 길한데, 만약 이들 중 하나라도 갖추지 못했다면 배는 전복되든가 표류한다. 또 우물은 절대 파서 안 되는데, 땅에 우물을 파면 배 밑바닥에 구멍이 뚫려 배가 가라앉기 때문이다.

돗질산 정상에는 골조공사만 마무리한 채 30년간이나 방치된 삼성 소유의 영빈관이 있었는데, 지난해 여름에 삼성은 이 건물을 철거한 다음 조경수를 심었다. 이 영빈관은 1964년에 한국비료를 건립한 삼성 측이 회사(삼성정밀화학) 내에 있던 돗질산의 정상에 2층 규모의 영빈관을 착공해 공사하던 것이었고, ‘한비 사카린 밀수사건’이 터지자 공사를 중단 한 후 근래까지 흉물스럽게 방치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현대자동차가 지금보다 더 큰 회사로 성장하려면 반드시 돗질산의 정상에 돛대를 상징하는 키 높은 조형물을 세워야 하는데, 울산 타워의 건립이 제격이다.

왜냐하면 현대자동차는 울산보다 지리적 조건이 열악한 아산과 전주에 이르기까지 공장을 확대했는데, 이것은 돗질산 자체의 돛만으로는 행주형이 항해할 수 있는 선적량을 이미 넘어섰기 때문이다. 때문에 돗질산의 자연적인 돛에다 타워 같은 인공적인 돛을 더 매달아 줌으로써 큰 짐을 싣고서도 거뜬히 항해하도록 지기의 발동을 복돋워 줘야 한다. 따라서 울산시가 돗질산을 시민휴식공간으로 개발하려는 계획에 현대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자동차의 주산인 무룡산의 지세에 있다. 무룡산은 산세가 용이 춤을 추는 모습이라 붙여진 이름인데, 여의주를 얻은 용이 구름을 타고서 온갖 조화를 부린다면 바다에는 풍랑이 거세어져 배가 전복될 위험이 크다. 따라서 무룡산의 용은 풍운조화의 힘은 지니되, 배가 순행할 정도의 바람만을 일으켜야 길하다. 그러므로 춤을 추면서 호흡을 거칠게 내뱉는 용보다는 누워서 숨을 편안히 내쉬는 ‘와룡망수형’(臥 龍望水形)의 형국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룡산’을 ‘와룡산’으로 지명을 바꿔 부르고, 또 무룡산에 닻 모양의 쇠 조각을 설치하면 좋다. 왜냐하면 춤을 추던 용이 쇠 무게에 눌려 스스로 몸을 땅에 눕히니 무룡산이 자연스럽게 와룡산으로 변하고, 그 결과 배도 균형을 잡고서 안전히 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충남 태안의 안흥량(安興梁)은 본래 이름이 난행란(難行亂)이었다. 험한 바닷길로 배가 자주 조난을 당하자 붙여진 이름인데, 뱃길이 편안하다는 안흥량으로 고쳐 부른 다음에는 바다가 편안해졌다고 한다. 개명( 改名)비보의 실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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