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선생을 만난 이 후로 문화 답사가 아니라 풍수 이론과 현장 풍수의 공부가 시작되었다.
 휴일마다 장소를 옮겨가며 이론을 배웠고, 어느 정도 이론이 끝나자 현장 답사를 다녔다.
 선생은 나와 동향(同鄕) 분으로 자상하면서도 엄격하셨다. 내가 배운 풍수론는 패철의 용법을 바탕으로 한 이기론으로 물과 좌향을 중시하며 풍수에서는 가장 어려운 학문에 속한다. 

 그런데 이기론을 깨우치기는 꼭 늙은 호박을 요리하는 것과 같다. 껍질은 딱딱하여 칼이 잘 들어가지 않지만, 일단 원리만 터득하면 호박죽 먹듯이 응용이 무궁무진하다. 자연을 공식에 맞추어 감결하니, 방법이 논리적이고 검증하기도 어렵지 않다. 또 가장 커다란 장점은 같은 혈에서 모두 같은 결론이 내려지는 점이다. 

 풍수는 한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해서 곧바로 자연의 오묘한 이치를 깨우칠 수는 없다. 서적을 다양하게 읽어 그 장단점을 일일이 머리 속으로 정리해야 비로소 자기 것이 된다. 
선배 풍수가의 현장 답사기도 빼놓지 않고 읽어야 이론 체계가 제대로 잡힌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선배 풍수가의 가르침을 받으며 스스로 산하를 누비며 자연 현장에서 풍수의 응용력을 키우는 일이다. 현장 해득력이 부족하면 안방 풍수요, 풍수 이론이 부족하면 지팡이 풍수가 되는 것이다. 내가 풍수의 길을 생각한 것은 보험 영업에 심한 자괴감에 빠져 있을 때이다. 퇴사를 생각했으나 뾰 족한 대안이 없었다. 일단 글이나 쓰고, 연구나 하자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생활이 안된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내 보험실적으로 보아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만약 회사를 다닐 결심이라면 이제는 글이나, 풍수 연구, 답사 등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보험에만 매진해야 한다. 그런데 몇 년을 더 다닌 뒤에 퇴사한다면 그때 가서 과연 무엇이 남아 있을까 고민되 었다. 어느 날이다. 방송 출연을 위해 여의도로 향하는데 눈앞에서 가족들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가족은 나 를 한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키와 같은 존재이다.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때 머리에 번쩍하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지금 아는 것을 떠들러 간다. 방송국에서 나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내가 묘 분야에 서 가장 많이 아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보험으론 꼴찌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묘와 풍수는 다르 다. 그렇다면 풍수와 관련된 일을 해 보자.' 결심이 샘솟았다. 나는 풍수서를 매우 많이 정독하였고, 어떤 책은 책장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다. 

 풍수 현장은 누구보다도 많이 다녔다. 풍수는 책을 읽는 것에 그치는 학문이 아니 다. 생기가 모인 진혈을 스스로 찾을 수 있어야 하고, 옛묘가 잘 모셔졌나 혹은 잘못 모셔졌나를 감결 할 수 있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때를 잘 맞추어 장사를 지낼 수 있는 장택법도 알아야 한다. 이 세 가 지를 고루 갖추어야 진정한 풍수가인데, 이는 서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유기성이 있 기 때문이다. '풍수지리 연구원을 만들자.' 풍수의 원리를 쉽게 이해하는 글을 쓰자는 결심과 함께 나는 7월 초순에 '대동풍수지리연구원'을 설립 하였다. 그런데 세상의 어느 누가 나를 풍수에 조예가 깊은 사람으로 인정해 주겠는가? 그래서 내가 알던 풍수 지식을 책으로 쓸 것을 결심했다. 

 1998년 여름은 참으로 비가 억수로 왔다. 나는 일단 안 양에 삼백만원짜리 보증금의 허름한 사무실을 세내어 한구석에 파묻혀 몇 달동안 글을 써냈고, 그 결 과 나온 책이 〈쉽게하는 풍수공부〉였다. 쉬운 글쓰기를 통해 젊은이들도 이해하기 쉬운 논리적인 전개를 시도하였다.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새벽에 사무실에 나와 밤늦도록 글을 쓰며 먹었던 짜장면 이 떠오른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풍수지리연구원은 몇 달 뒤 지금의 서초동 사무실로 옮겨 올 수 있 었다. 『한국의 묘지기행』을 읽어 나와 친분이 두터워진 독자분이 선뜻 사무실을 얻어 주었다. 그러 나 나는 어디에서도 경제적인 수입을 창출할 수 없었다. 그때는 풍수지리 강의를 한 것도 아니어서 어떻게 해나가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하였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가서 얼마남지 않는 돈도 바닥이 나 버렸다. 수중에 겨우 15만원이라는 돈이 딸랑 남았다. 심지어 승용차에 기름 넣을 돈이 없어서 차가 길거리에서 서 버린 경우까지 발생했다. 

 참으로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연구원을 얻어준 분까지 회사를 퇴직하면서 사무실의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하였다. 지금 형편이 어려우니 좀 여유를 달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처지가 더 다 급했던지 그 분은 막무가내였고, 게다가 지금까지 사용한 돈의 이자를 달라고까지 했다. 돈 앞에서는 모두 치사해지기 마련인가 보다. 또 함께 퇴직한 사람들도 내 앞에서는 잘 될 것이니, 성공할 것이니 해놓고선, 뒤돌아서서 그게 잘되겠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정말로 어려운 시기였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는 반면 정말로 내게는 귀한 분들도 있었다. 서울에서 다시 내몰릴 시점에 사심없이 도와준 사람이 계셨다. 처음으로 나에게 풍수를 배우러 오신 임정환 교장선생님이셨는데, 그 분이 선뜻 사무실을 다시 얻어 주었다. 

 그 분은 효심으로 부모님을 공경하고, 모실려는 분이셨다. 그 분의 도움으로 어려운 시기를 넘긴 나는 1999년에는 연구원에서 간행한 이기와 형기풍수학을 집 대성한 〈감여요결〉을 내어 강의 교재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이곳저곳의 풍수지리 강의도 많이 나가 게 되면서 연구원으로써 틀을 잡아나갔다. 그 가운데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나의 관점에서 좋은 분들도 계셨고,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 도 있었다. 

 새장과도 같은 직장생활과는 천양지차로 다른 세상이었다. 하지만 나와 함께 뜻을 같이하 는 많은 지인들을 얻고, 그 분들이 계셔서 나는 이 생활이 어렵지만 보람차고 즐겁다. 또 작년에는 〈도선국사 유산록〉과 양택 풍수서인 〈양택과 가상〉이란 책을 간행하여 회원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풍수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 그 결과를 서적으로 출간할 것이다. 그동안 부족한 나에게 풍수학을 전달받은 분들이 나와 함께 뜻을 같이하고자 풍수연구모임인 '대동풍 수지리학회'를 결성하여 여러가지 다양하고 활발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것도 참으로 보람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