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 조각품들은 각양각색의 형태를 취하면서도 자비로움이 물씬 풍긴다. 석가여래불(釋迦如來佛)는 대개가 서 있거나[立像] 앉아 있는 모습[坐像]으로 조각되고,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여래불(阿彌陀如來)도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모습이다. 또 석가여래가 열반에 들고 난 후 56억 7천만년이 지나 사바세계로 올 미륵 보살은 거의가 오른손을 빰에 댄 채 깊은 명상에 빠져 있는 반가상의 형태이다. 관음보살상은 영락을 화려하게 단 법의를 입고서 자애롭게 서 있는 모습이 많다.
여주에 있는 신륵사(神勒寺)를 찾았을 때다. 그 절은 세종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중창한 절로 푸른 여강과 어루러져 경치가 매우 그윽하다.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손을 맞잡고서는 큰 법당 댓돌 위에 올라 소곤거렸다. “왜 부처가 세 명이나 앉아 있지?” 엉덩이를 사정없이 조인 청바지에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남자의 허리에 매달려 물었다. “응, 그것은 중앙에 있는 부처가 진짜이고 그 곁에는 부인들이야. 한 명은 부인이고 다른 분은 세컨드야.” “정말?” “그럼, 꾹 꾹.” 너무나 황당하고 당돌한 대답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신세대에게 ‘삶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즉흥적으로 ‘삶은 달걀.’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석가여래불은 생로병사의 인연을 깨닫지 못하고 번뇌에 고통받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이 세상으로 오셨다. 법당에 모셔진 세 분의 부처님은 대웅전일 경우는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왼쪽에는 지혜의 보살인 문수보살(文殊菩薩), 그리고 오른쪽에는 이(理)․정(定)․행(行)의 덕을 관장하는 보현보살(普賢菩薩)을 모신다. 그리고 극락보전일 경우에는 아미타불을 중앙에 모셔 사후 극락정토에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하고, 오른쪽에는 제석천을 관장하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이나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왼쪽에는 대자대비(大慈大悲)한 마음으로 중생의 바램을 받아들이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을 두어 구원을 받도록 하였다.
여자의 질문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어느 절은 ‘대웅전’인데, 이곳은 왜 ‘극락보전’이야?” “똑같은 말인데, 불교의 교파에 따라 달리 부르는 거야. 개신교는 ‘하나님’이라 부르고 천주교는 ‘하느님’이라 부르는 경우와 같아.” 어깨까지 으쓱대며 거만을 떠는 남자를 여자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아니다. 대웅전은 현세의 중생을 구제하는 석가여래불를 모신 절이고, 극락보전은 왕이나 왕족의 극락 왕생을 비는 원찰로 아미타불을 모신 절이다. 아미타불은 극락세계에 머물며 뭇 생명 있는 자들의 극락왕생을 주관하는 부처로,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만 외우면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즐거움이 가득한 서방정토(西方淨土)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믿는 신앙이다. 이 사상은 일반인들이 부처의 오묘한 사상을 쉽게 접할 수 있어 급속히 대중화되었다.
(사진: 사산의 마애삼존불, 국보 제84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