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희의 풍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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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쏘시게가 될 뻔한 금강내강



   일제 강점기, 우리가 얼마나 고서화에 대해 무지했었던 가를 알려주는 재미나는 일화가 전한다. 때는 1930년 대 초 골동 거상이던 장형수(張亨秀)가 지방의 오래된 고가를 돌아다니며 고미술품을 구입하러 다닐 때다. 하루는 용인에 있는 송병준(宋秉峻, 1858~1925)의 집에 들려 마루에서 쉬고 있었다.

   송병준은 일진회를 조직해 매국 활동에 앞장섰던 친일파의 거두로 대궐 같은 집을 짓고 살았다. 하루 밤을 자게 된 그가 화장실을 가다보니까, 머슴이 군불을 때고 있는데 문서 뭉치를 마구 아궁이에 쳐 넣고 있었다. 직감에 군불을 때기 위한 불쏘시개 감으로 쓰기에는 아까운 문화재들이라 생각들었는데, 문득 초록색 비단으로 귀중하게 꾸민 책이 눈에 띄었다. 장형수는 급히 그 책을 보자고 하였다.

   “그 서책 좀 보여주게. 곧 다시 주겠네” 호기심에 끌려 무심코 안쪽을 펼친 장형수는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놀랐다. 21여 폭이 되는 겸재의 화첩(畵帖)이었다. 그림마다 명필 홍봉조(洪鳳祚, 1680~1760)의 글씨가 보였다. 겸재가 72세 때에 그린 금강산의 실경산수도로 불후의 명화첩이었다. 그는 주인에게 20원을 집어주고는 그 화첩을 서울로 가져와 한남서림(翰南書林)에 팔았다. 거금을 손에 쥔 것은 물론이다. 국보급 문화재가 불구덩이로 들어 가 영영 재로 변할 뻔한 아슬아슬한 장면이었다.

   한남서림은 전형필이 뒤를 보아주던 고서적 상점이다. 당연히 전형필이 이 화첩을 구입했다.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이 바로 이 화첩이다. 조상이 남긴 귀중한 문화유산이 우매한 후손에 의해 불쏘시개로 쓰일 위기에 몰렸던 유명한 일화이다.


(사진: 불쏘시게호 변할 뻔한 '금강내강도'- 간송 미술관 소장)

고서화의 감정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