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희망이다 13]전쟁이 삼킨 한국의 숲
오늘 아침도 북한산을 마주하며 집을 나선다. 그리고 도봉산, 수락산을 지나 축석령을 넘어 소리봉을 주인으로 하는 광릉 숲을 창 너머에 두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광릉 숲!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렐 만큼 아름다운 숲이 아닌가? 1468년 조선조 세조대왕께서 자신의 능림으로 지정한 이후 철저하게 보호되기 시작한 지 500여 년의 세월을 그들만의 약속으로 자연스럽게 변화해가는 모습으로 오늘을 지키고 있는 광릉 숲이 내 일터다.
1989년 가을, 큰 숲으로 만들기 위하여 25년에 심은 잣나무 숲에서 솎아베기 작업을 하였다. 가슴높이의 지름이 60㎝ 정도면 대단히 큰 나무임에 틀림없다. 그것도 서울에 인접한 광릉 숲 한 자락에 자리를 하고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잘려 나오는 나무마다 속이 퍼렇게 멍이 든 것이 아닌가? 6·25전쟁 때 중공군이 쏜 포탄이 소리봉을 넘지 못하고 잣나무 숲에서 터지는 바람에 파편이 박혀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멍이 든 것처럼 색깔이 변한 것이라고 한다.
몸속 구석구석 시퍼런 멍을 삭이면서 50년 가까이 아무런 내색도 없이 살아온 그의 겉모습에 만족해왔던 자신이 부끄러웠던 기억을 끄집어 내본다. 전쟁이 삼켜버린 숲. 어쩔 수 없이 우리 민족사에서 잊을 수 없는 6·25전쟁을 물고 늘어지지 않을 수 없다. 수백 만에 이르는 인명피해와 22억달러라는 엄청난 물적 피해를 남긴 전쟁 속에 온전하게 남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라 짐작한다.
전쟁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는 물론 사회 혼란기를 틈타 사람들에 의한 산림훼손은 매우 심각하였으나, 73년부터 국토녹화를 위한 치산녹화 10년계획을 3차에 걸쳐 약 1백억 그루의 나무를 심어 오늘날 전체 산지의 97%를 푸른 숲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숲을 복구한 유일한 나라, 개발도상국 중 가장 단시일에 국토녹화에 성공한 나라로써 자리매김에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삼켜버린 숲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라고 할 수 있는지 되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지구상에 생명체의 보고(寶庫)라 불리는 숲은 언제 생겼을까? 지구의 나이가 대략 45억년이라고 하니 숲의 나이도 그 정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으나, 지금으로부터 4억년 전에 오존층이 생겨나면서 많은 양의 산소를 가둘 수 있는 대기권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수중 식물들이 지치지 않는 도전정신으로 육상식물로 진출하면서 결국 3억5천만년 전에 이르러서야 지금과 같은 숲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숲에서 유래한 석탄과 석유는 문명의 꽃을 피우는 원동력으로 인류사회에 등장하였으나 대기오염, 탄산가스에 의한 온난화, 오존층 파괴, 사막화 확대라고 하는 지구환경의 심각성을 깨닫게 하는 원인으로 지적받게 되는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숲은 지구적 규모에서 지키고 가꾸기 위한 끊임없는 인간의 노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2차에 걸친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이 숲을 지켜낼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전쟁 배상 요구금을 목재로 지불하라는 승전국의 끈질긴 요구를 거절했다. 도로나 공장들은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만들어낼 수 있으나, 숲은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한마음으로 뭉쳐 숲을 지켜낼 수 있었을 것이다. 숲과 더불어 문화를 발전시켜온 독일인들에게 숲은 정신적·물질적 원천인 삶 자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두 번에 걸친 패전의 아픔 속에서도 지켜낸 숲을 잘 가꾸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선진 산림국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니엘 B 보트킨은 저서 ‘Discordant Harmonies’(1992)에서 자연은 쉬지 않고 변화한다고 하여 자연은 인간의 간섭이 아니더라도 화재, 바람, 침식, 빙하 등 자연현상에 교란당하고 있으며, 이런 조건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끊임없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하였다. 전쟁이 삼켜버린 숲이 어느 정도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 속에서의 그들만의 또다른 지루하고도 치열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숲은 인간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생명자원이며,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경제자산인 동시에 문화유산이기에 우리 모두의 힘으로 지켜내야 할 소중한 대상인 것이다. 또한 숲은 지구상에 영원한 미래의 주역인 인류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일 뿐 아니라, 지금의 우리는 땀을 흘리며 가꾸어 그들에게 넘겨주어야 할 자산이기 때문이다.
항상 창 너머 그 자리에 있어준 상수리나무의 녹음이 든든하게 느껴진다. 올해도 가을이 오면 도토리가 열릴 것이다. 덩달아 다람쥐도 바삐 오갈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에는 몸을 움츠리고 떨지도 모르겠다.
숲은 막상 전쟁보다 인간의 탐욕과 증오로 더 많이 희생되고 있다. 정작 전쟁보다 전쟁을 일으키는 못된 심성에 의해 숲이 사라지고 있다. 전쟁이 50년 초여름의 녹음을 삼켜버렸고 다시 반세기가 흘렀지만 숲은 여전히 떨고 있다. 이제 개발이란 또다른 전쟁이 진행중이고 포탄 대신 굴착기가 혀를 날름거리며 숲을 노려보고 있다.
내년 봄에도 모든 산에서는 도토리에 작은 새싹이 돋는 생명평화가 지속되기를 빌어본다. 모든 숲에서는 생명의 노래가 흘러 넘치기를 기대한다. 단언컨대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석권/국립산림과학원 임업연구관〉 [경향신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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