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고제희 ........ 이 글은 월간거제 2002. 7월호에 기재한 글입니다.]
계룡산의 얼굴과 뒤통수
풍수에서 산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첫째 산이 혈을 품은 내룡을 출맥시킨 역할을 담당하고, 둘째는 산의 모양이나 방위를 보아 묘나 주택을 지은 다음 지기(地氣)의 발복에 의해 어떤 인물이 배출될 것인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산이고 혈을 맺는 것은 아니며, 혈을 맺지 못하는 산이라면 흉하게 본다.
초목이 자라지 못하는 동산(童山)이나, 암석이 겉으로 드러난 석산, 용맥의 지기가 멈추지 못한 과산(過山), 사방이 허하며 홀로 솟아난 섬같은 독산(獨山), 용맥이 붕괴되거나 끊어진 단산(斷山)등이 그들이다. 또 산에는 앞면과 뒷면이 있고, 혈은 뒤통수에 해당하는 뒷면 보다는 얼굴에 해당하는 산기슭에 맺힌다. 산을 사람에 비유할 때에 이마는 승금(乘金)으로 기를 집중시키고, 혈은 인중(人中)에 맺고, 턱은 혈에 응집된 기가 앞쪽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 전순(纏脣)으로 보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따라서 비룡승천의 땅인 거제도에서 혈이 맺힌 복된 터를 찾고자 한다면 거제의 진산인 계룡산을 바라보아, 어느 쪽이 산의 얼굴에 해당하는 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즉, “거제 계룡산 아래에 많은 사람을 구제할 땅이 있다.(巨濟鷄龍山下救百萬)”란 설의 본거지는 과연 계룡산의 북쪽에 자리한 고현쪽인가 혹은 옛날 거제 현감이 살던 남서방의 거제면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계룡산은 낙남정맥의 막내산으로 통영의 벽방산에서 바다를 도수협으로 통과해 솟아난 산으로 형세는 북서방에서 남동방으로 길게 누워있다. 수탉의 벼슬 모양의 세 바위가 솟아있어 닭도 같고 용도 같다하여 불려진 이름이고, 북동방쪽으론 가파른 경사 그대로 진해만으로 빠지고, 남서방은 급경사가 꺽인 채 완만한 구릉을 이루면서 슬며서 거제만으로 들어갔다. 따라서 고현쪽은 해심이 깊어 들판이 적고, 거제면은 둥근 산으로 에워싸인 안쪽에 논밭이 풍요롭게 펼쳐졌다. 가히 삼한시대 같으면 작은 나라의 도읍지로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사람을 바라 볼 때, 만약 뒤통수를 보고 이야기한다면 서로의 마음도 불안하고 정감도 생기지 않는다.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할 때야 감정이 동화되어 친근감을 느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산의 앞뒷면을 가릴 때도 좀더 너그럽고 편안한 터를 만든 쪽이 얼굴에 해당하고, 사람을 무정히 외면한 쪽이 뒤통수이다. 따라서 계룡산의 산세를 보아, 마을과 도읍이 들어설 터의 조건은 고현보다 거제면이 풍수적으로 더 길하다.
갈룡음수형의 명당 거제 향교
풍수에는 “금계포란형”, “장군대좌형” 같이 어느 장소를 사람이나 짐승 혹은 새의 모양에 비유해 혈을 찾는 방법이 있다. 이것은 산천의 겉모양과 그 안의 정기는 서로 통한다는 가정에 전제를 두고, 보거나 잡을 수 없는 지기를 구체적인 형상에 비유해 표현한 것이다.(물형론) 그리고 산천이 힘을 쓰거나, 긴장하거나, 정신을 집중시킨 곳을 생기가 응집한 혈로 간주한다. 들판이 넓게 펼쳐진 거제면은 양택(집터)으로서는 대단한 땅이다. 특히 거제향교는 계룡산의 지기를 한 몸에 받아 명당 중에 명당이다.
향교는 계룡산에서 남동진한 용맥이 고자산고개를 지난 후 몸을 남서진으로 틀어 우뚝 솟고, 다시 잘록한 낮은 과협을 통과한 다음 몸을 북서진으로 바꾸고, 이어서 머리를 동산에서 들고 입을 길게 빼고는 바닷물을 마시는 듯한 갈룡음수형(渴龍飮水形)의 길지에 터를 잡았다. 계룡산에서 뻗어온 용맥이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니, 활달한 지기를 보아 동산은 용의 머리, 향교는 용의 입에 해당한다.
입술이 바짝 타들어가도록 목이 마른 용이니, 기는 용의 입부위에 응집되고, 물로 급히 달려드니 이 기운으로 산기운이 발동해 복을 가져온다. 또 이기 풍수로 향교 터를 살펴보면, 좌선(左旋)한 물이 곤방(坤方)으로 빠지는 목국(木局)인데, 내룡은 계축방(癸丑方)에서 입수하였다. 소위 관대룡(冠帶龍)에 해당하는 생기 왕성한 터로, 입수룡이 생기를 품었으니 대발할 터이다. 술방(戌方)의 산방산은 천괴(天魁)에 해당되어 검찰 계통의 인물이, 오방(午方)의 노자산은 천마(天馬)로 운송업에 종사할 큰 인물이 태어날 산이다.
또 “바람을 맞으면 기가 흩어진다(風則氣散)”라고 하였다. 음양이 조화를 이룬 길지는 바람이 잠자고 생기는 흩어지지 않는 장소로, 섬은 거센 바다의 양기로 땅의 음기가 쇠약해지기 십상이다. 따라서 섬이라면 주산이 뒤를 막고, 청룡과 백호가 좌우를 감싸고, 앞쪽에는 살풍을 막는 안산을 갖춘 국세가 좋다. 거제 향교는 산방산에서 화암산으로 남진한 용맥이 백호가 되고, 선자산에서 서진한 용맥이 좌측을 감싸 청룡이 됐다. 뒤쪽은 계룡산이 병풍처럼, 앞에는 오수리 야산이 안산의 국세를 이루었으니, 생기가 충만할 조건을 고루 갖추었다.
하지만 목마른 용이 발동시킨 지기도 용이 조화를 부릴 때만이 발복을 주는데, 용이 승천해 온갖 조화를 부리려면 반드시 여의주를 얻어야 한다. 때문에 용이 희롱할 여의주같은 동산이나 지형물이 주위에 있어야 지기가 발복으로 이어진다.
봉황은 상스러운 새로 봉황이 날아들면 마을에 태평성대가 온다고 한다. 그래서 봉황이 날아오도록 오동나무 동산을 마을 앞쪽에 조산(造山)한 예가 많고, 거제면에서 용이 희롱할 여의주는 충혼탑이 들어선 동산이 분명하다. 이 동산은 향교를 이룬 지맥이 바다를 향해 뻗던 중 여기(餘氣)가 뭉쳐 솟은 것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나무가 무성한 이 동산이 사시사철 꽃 피고, 단풍 들고, 낙엽 지는 등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으로 용을 희롱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충혼탑과 진입로가 들어서면서 훼손된 여의주는 철따라 광채를 바꾸지 못했다. 그 결과 용은 희롱할 기분을 잃고서 조화를 부리지 않는 잠룡(潛龍)으로 변했으니, 산기운의 발동도 작아져 거제면의 지기가 쇠락해 진 것이다. 자연을 개발할 대는 자연이 가진 가치와 질서를 올바로 파악하고, 그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는 지혜가 아쉬운 대목이다. 따라서 거제면이 위대한 인물을 배출해 웅비의 날개를 펴려면 충혼탑을 예전의 여의주처럼 영롱한 구슬로 다시 바꾸는 변화가 필요하다.
선인독서형의 명당 김대통령 생가
장목면 외포리에 있는 대계마을은 제14대 김영상 대통령이 태어나 13세까지 성장한 곳이며, 생가와 조상 묘들도 그곳에 있다. 아담하고 작은 포구마을로 주변 산세가 수려하고 수평선을 넘나드는 갈매기는 어촌 마을의 평화로움을 더해준다.
2001년 정비 공사를 마친 김 대통령의 생가는 팔작기와지붕의 본채와 사랑채 그리고 사주문으로 구성되고, 예저의 형태를 그대로 본 따 현대식으로 정비하였다. 생가 터는 계룡산에서 남동진한 용맥이 북병산으로 솟고, 그곳에서 재차 북진한 용맥이 국사봉을 거쳐 강망산으로 솟은 다음, 강망산에서 북진한 기맥이 몸을 동진시켜 바다를 만나며 지기를 응집시킨 곳이다.
낮은 동산의 남쪽 기슭에 자리한 생가는 김 대통령이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살고, 신혼 초에 신접살림을 차리기도 했다. 안채와 사랑채가 “ㄱ”형태로 지어졌고, 4칸 규모의 안채는 “ㅡ”자형으로 방안에는 단출한 가재 도구와 함께 벽에는 대통령 내외분을 비롯한 조상의 사진이 걸리고, 뒤뜰에는 깊은 우물이 있다.
안채의 좌향은 남서향인 곤향(坤向)으로, 마당의 중심에서 대문의 방위를 판단하면 역시 곤문(坤問)이며, 안방의 방문은 인주(寅主)이다. 양택 풍수로 보아 곤문간주(坤門艮主)에 해당하는 생기택(生氣宅)이다. 재산이 쌓이고 남녀가 번성하고 자식이 효도할 집으로 풍수상 복지에 해당한다. 그러나 부엌만큼은 곤문진조(坤門震조)라 관재구설에 시달릴 위치에 자리 잡았다. 장수하고 공명은 높겠으나 관재구설이 있을 집이니 김 대통령의 정치 행로는 생가의 기운에 발로한 바가 크다고 본다.
또 생가를 에워싼 주변 산은 붓끝처럼 뾰족한 문필봉과 책을 펼쳐놓은 듯한 책안(冊案)이 수려하다. 풍수는 이런 모양의 산이 가까이 있으면, 일세를 풍미할 문장가나 또는 학자가 태어날 선인독서형(仙人讀書形)의 터로 부른다. “인걸은 지령(人傑地靈)”이라 했으니, 김 대통령은 정치보다는 학자로써 대성할 산천의 기운을 받고 자란 분이라 생각된다. 대계마을 남쪽의 고개 길 못미친 도로의 우측 산기슭에 김 대통령의 조부모 묘가 자리하고 있다.
쌍분인 묘는 보통의 민묘같이 소박하고 단출한 형태인데, 중앙에 놓인 묘비와 상석에는 “十”가 표시되고, 또 “聖徒”란 글자가 새겨져 기독교를 믿었던 분으로 보인다. 묘는 강망산에서 바다를 향해 동진한 용맥이 좌우를 감쌌고, 바다가 작게 보이는 아늑한 곳이다.
묘로 입수된 내룡은 이기적으로 신술(辛戌)의 관대룡(冠帶龍)이나, 지맥은 형상은 뚜렷치 못하다. 우선(右旋)한 물이 인파(寅破)인데, 묘의 좌향은 신좌을향(辛坐乙向)을 놓아 소위 관대 입수(冠帶 入首)에 금국의 정양향(正養向)이다.
후손과 재물이 번창하고 남녀 모두 장수하며 공명현달할 길향으로 조부모 묘는 땅 명당보다는 향 명당에 가깝다. 지기가 출중한 곳도 좌향을 잘못 놓으면 풍수적 발복은 작아지고 오래되면 재앙을 입을 수 있다. 왜냐하면 땅은 음(陰)이요 향은 양(陽)인 수(水)를 취하는 방법인데, 양기인 수를 음기인 땅이 당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생가에서 바라보이는 왼쪽 산 능선에는 모친인 박부연 여사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호석을 두른 봉분 앞에는 열녀사적비가 서 있고, 상석 좌우에는 석양을 배치하였다. 일설에 공산 당원에 살해당했다는 박 여사의 묘는 병풍석에 장대석까지 설치해 조부모 묘보다는 치장이 더 요란하다. 비록 마을 뒷산이 바다로 뻗으며 외청룡을 이루었으나 우측의 백호는 형체가 미약한 채 묘를 감싸지 못해 바람이 거세게 부는 곳이다.
북쪽으로 뻗은 내룡에 묘가 위치하고(丙午龍), 좌선한 물이 간방(艮方)으로 빠지고, 묘는 정북향인 오좌자향(午坐子向)을 놓았다. 지기는 왕성하나 물이 병방(丙方)으로 빠지니 단명과숙수이다. 병사의 흉방을 범했으니 산업은 패하고 집안에 병마가 침범하니 좌향을 그르친 결과이다. 따라서 부친의 유택만큼은 현재보다 조금 위쪽으로 터를 잡고, 금국(金局)의 정묘향인 정좌계향(丁坐癸向)을 놓아야 한다. 문장가가 태어나고 후손은 번창하고 발복이 영원할 것이다.
지기쇠왕설과 거제의 풍수
땅은 생명체로써 사람과 같이 생로병사의 윤회를 거듭하며, 그 생명력 역시 시간과 그 땅을 차지한 사람에 따라 왕성해 지거나 또는 쇠약해진다. 소위 지기쇠왕설(地氣衰旺設)로 땅의 기운이 왕성할 때라면 부귀와 번영을 누리고, 땅의 기운이 쇠약할 때라면 재앙과 불행이 닥쳐온다고 본다. 즉, 지기는 변화하며 그 변화 중에서 지기가 왕성한 때를 선택해 살거나 또는 쇠약한 곳보다는 왕성한 곳을 택해야 건강과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다.
비룡승천의 땅, 거제도. 이 땅도 끊임없이 지기가 변하는데, 문제는 용이 조화를 부릴 여의주가 현재 어디에 있고, 또 향후는 여의주가 어느 곳에서 광채를 뿜을 것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예전에는 거제면의 지기가 가장 왕성했으나 현대는 조선소가 위치한 고현과 장승포로 옮아졌다. 왜냐하면 선박을 건조하며 튀기는 불꽃으로 용은 눈을 떴고, 바다에 떠나니는 선박은 여의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의 지기는 관광산업에 다른 놀이동산으로 옮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거제도는 천혜의 자연을 가진 한국 최대, 최고의 관관지로 발전할 것이 분명하며, 놀이동산에서 밤낮으로 뿜어내는 휘황찬란한 빛이 또 다른 여의주가 되어 용의 기운을 그 쪽으로 끌어당길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거제도의 미래는 관광산업에 대한 계획적인 투자와 개발에 달려있으며, 난개발이 아닌 자연친화적인 생태적 개발이 되어야함은 당연하다.
[사진 : 김영삼 대통령의 생가가 소재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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