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거진천과 사거용인의 유래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란 말은 다음과 같은 연유에서 생겨났다 한다. 옛날에 효심이 지극한 두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형은 용인에, 동생은 충북 진천에 살고 있었다. 어찌나 효성스러웠던지 서로가 어머니를 모시려고 다투었고, 어머니는 진천의 동생 집에서 살면서 항상 불안해 하였다.
어느날 형은 참다 못하여 진천 원님을 찾아가 자기가 어머니를 모실 수 있게 해달라고 송사를 내었다. 그러자 원님은 두 형제의 뜻을 갸륵하게 여겨 말하기를, "부모를 모시는 것은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살아 생전 모시는 것과 죽어 제사를 지내는 것이 있다. 따라서 살아서는 진천의 아우가 정성을 다하여 모시고, 돌아가시거든 묘를 용인에 두고 형이 제사를 지내도록 하라" 고 하였다 한다.
풍수학은 바람과 물의 순환 이치[天] 그리고 땅의 형성 과정과 지질적 여건[地]을 연구하여 사람[人]이 자연 속에서 좀더 건강하고 안락하게 살 터를 구하는 동양의 지리관이자 경험 과학적 학문이다. 방법은 지질, 일조, 기후, 풍향, 물길, 경관 등 일련의 자연적 요소를 음양오행론(陰陽五行論)에 의해 관찰한 다음, 그들이 사람에게 미치는 다양한 영향을 파악하고, 각각의 우열을 가려서 그 중에서 좋은 것을 생활에 이용한다.
조상의 묘지를 자연의 생명력이 왕성한 곳에 택하여 영혼과 유골의 편안함을 구하거나, 주택을 길지(吉地)에 지어서 지력(地力)에 의해 건강과 행복을 꾀하거나, 마을과 도시가 들어설 부지를 선택하거나 혹 부지와 건물 내부에 생기(生氣)가 부족하거나 결함이 있다면 지혜를 기울여 살기 좋은 터로 바꾸는 것 역시 풍수지리학이 일상에 쓰인 방법들이다.
풍수학의 본질은 자연이 가진 왕성한 생명력에 감응받음으로써 인생의 건강과 행복을 꾀하는데, 그 생명력을 생기라 부른다. 물, 온도, 바람, 햇빛, 양분과 같은 요소가 복합된 개념으로 음기(陰氣)와 양기(陽氣)로 나뉜다. 음기는 땅 속에서 취하는 생기(물·온도·양분)로 만물의 탄생을 주관하고, 양기는 땅 위로 흘러 다니는 생기(공기·햇빛·온도)로 만물의 성장과 결실을 주관한다.
바람과 물의 순환 궤도와 量[양기(陽氣)]은 사람의 생명 유지와 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땅의 생명력[음기(陰氣)] 역시 왕성하고 쇠약한 정도의 차이가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따라서 풍수학은 사람이 보다 건강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는 터와 방향(좌향)을 선택하는 방법과 과정이 학문적으로 쳬계화되어 오랜 세월 전승·발전해왔다. 그러므로 풍수학은 초목이 자라는 산야에서 생기가 응집된 혈을 찾음을 일차 목적로 삼기 때문에, 십 년을 공부했어도 진혈을 찾지 못한다면 공염불에 불과하다고 본다.
따라서 풍수학의 이론체계나 법술은 모두 혈을 제대로 찾는 방법과 과정을 제시하고, 그 과정과 방법을 충실히 답습하도록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풍수를 잘 모르는 사람은 풍수라면 모두 똑같다고 생각한다. 흔히 '금계포란형, 장군대좌형'같은 단어를 연상할 것이다. 이 이론은 물형론(物形論)으로 한국 풍수의 99%를 차지하지만 이론적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술법화 된 것에 불과하다.
생기충만한 터를 찾는 방법과 과정이 용, 사, 수에 맞추어 이론적으로 쳬계화된 풍수학은 형기론(形氣論)과 이기론(理氣論)이다. 형기론은 산세의 모양이나 형세 상의 아름다움을 유추하여 혈이 맺혀 있는 터를 찾는 방법론이다. 임신한 여성은 보통 여성보다 배가 부르듯이, 산에 혈이 맺혀 있다면 분명히 다른 장소와 유별난 특징이 있을 것이다.
그 특징을 이론화시키고, 산천 형세를 눈이나 감(感)으로 보아 이론에 꼭 맞는 장소를 찾아낸다. 그럼으로 형기론은 혈이 맺칠 수 있는 조건을 간룡법(看龍法)과 장풍법(藏風法), 그리고 정혈법(定穴法)으로 나뉘어 계승· 발전되었다. 간룡법은 상하좌우로 힘차게 꿈틀거리며 뻗어나간 산줄기[용맥]를 찾고, 장풍법은 혈에 응집된 생기가 흩어지지 않도록 주변의 산봉우리가 감싸준 곳을 찾고, 정혈법은 혈이 응결된 장소적 특징을 세심하게 살펴 찾는 방법이다. 이 이론은 배산임수가 잘 된 마을이나 주택 등의 부지 선정에 절대적 공헌을 하였다.
이기론은 땅에 혈을 맺여놓은 주체인 바람과 물의 순환 궤도와 양을 패철(佩鐵)이란 도구를 이용해 측정한 다음 혈을 찾으며, 나아가 좋은 좌향(坐向)까지 선택하는 방법론이며, 또 패철로 땅의 국(局)을 정한 다음 산줄기와 물의 길흉을 판별해 혈을 정한다. 여기서 물은 비단 자연의 물(구름· 지표수· 지하수)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정적(靜的)인 땅을 기계적· 화학적으로 변화시키는 동적(動的)인 양기의 총칭이다. 바람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이기론은 바람과 물의 순환을 중시함으로써 득수론(得水論), 패철을 이용해 혈을 찾음으로써 패철론, 좌향을 중시함으로써 좌향론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풍수학에서 혈을 찾고 좌향을 놓는 방법과 과정은 선조들의 경험과 지혜가 담겨 있으며, 절차에서 결과 분석에 이르기까지 합리적 내용이 풍부하다. 그렇지만 풍수에 부정적인 사람도 있다. 실증적이지 않으면 미신이라 치부하는 시대에, '땅의 생명력에 의해 복을 구하고 화를 피한다.'라는 풍수학의 인식론적 주장은 서구의 분석적인 사고 방식에 비추어 보아 검증 면에서 분명히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서양 학문은 짧은 시간에 연역적 방식으로 원인에서 결과를 규명하는데 비해, 풍수학은 오랜 세월 경험적으로 얻은 자연적 지혜를 학문적으로 체계화시켜 놓았으니, 과학이라 부르는 서양적 잣대로는 그 실증을 단숨에 검증키 어렵다. 그 결과 풍수학은 조상을 명당에 모셔 발복하겠다는 이기심의 학문으로, 나아가 미신으로까지 치부 당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풍수학은 지형이나 바람·물의 운행에 따른 잠재적 흉조를 감지하고 또 치유하는데 탁월한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으며, 또 초현실적 요소에만(발복의 문제)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면, 실상은 역사적인 진리를 가득 담고 있다. 사람이 보다 건강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는 터와 방향(좌향)을 선택할 수 있고, 이 방법은 현대 지리학, 지질학, 생태학, 조경학, 건축학 등 다방면에서 응용 가능한 합리적인 내용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다.
이제까지 풍수학을 비롯한 동양의 학문은 서구 과학문명이 인류에게 준 편리와 풍요에 눌려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들어서 산업 문명이 낳은 인구 폭발, 환경오염, 자원 고갈이란 심각한 재앙에 직면하자 그 대안으로 서구에서조차 다시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것은 동양의 정신 문화가 서구 기술 문명의 문제점을 치유하고 나아가 인류의 번영된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것은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도 그 내재 가치와 고유한 질서를 가지는데, 자연을 개발할 때면 자연의 고유 가치를 바로 살펴 그 질서와 목표에 순응토록 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이다. 이는 자연 생태계 전체와 유기적 조화를 이루는 우리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도 당연한 일이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낮은 산야에는 온통 묘들이 즐비하다. 어떤 학자는 이것을 두고 묘지공화국이라 빗대어 말하며, 그 주범으로 묘를 잘 써 발복을 받겠다는 명당선호사상 때문이라며 풍수의 사회적 해악을 꼬집었다. 그렇다면 과연 풍수학이 산소 잡기에 미친 이기적인 잡술 뿐이고 우리 사회에 해악만 끼쳐 왔을까? 이 물음에 대해 필자는 절대 아니라고 단언한다. 아시다시피 명당에 조상을 모셔야 후손이 발복한다는 풍수 사상은 유교의 조상숭배 사상과 맞물려 긴 세월 동안 매장 선호 사상으로 뿌리내렸다.
매년 여의도 면적 만한 국토가 묘지로 잠식당하자, 어떤 학자는 이를 망국병(亡國病)이라며 풍수학의 사회적 해독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또 매장 풍습이 국토 개발과 효율적 이용에 저해 요인으로 부각되자, 그 결과 『장사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어 시한부매장제와 묘지 면적 축소가 도입되었다.
분묘기지권(墳墓基地權)을 폐지하며, 최장 60년을 한도로 매장한 다음 그 후는 화장한다는지, 개인묘지의 경우 현재 24평에서 9평으로 집단묘지는 9평에서 3평으로 면적을 축소시킨 것 등이 개정 법률의 골자이다.
하지만 사체의 처리 방법으로 매장 풍습이 성행한 원인을 풍수 사상 때문이라고 매도해서는 안된다. 동물 중에서 주검을 땅에 묻는 풍습은 오직 사람 뿐이고 또 위생적인 처리 방법으로 선호되었다. 이는 선사 시대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으며 또 풍수 사상에 관심을 없는 서양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현대에 와 화장(火葬)이 널리 횡행하지만 매장 방식에 새로운 문제가 생긴 결과는 아니다.
땅의 이용을 극대화하자는 정부 정책의 결과라 볼 수 있다. 따라서 매장 풍습이 풍수적 산물은 아니며, 정통 풍수학이 권력자의 심리적 불안을 달래는 산소 잡기에만 악용되고, 또 불법만을 일삼아 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신라 말에 전래되어 지금까지 한국 국민의 56%가 풍수지리를 믿는 현실을 떠올려 보자.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오직 발복만을 생각하는 명당 선호의 풍조 때문일까? 아니다. 그것은 풍수학이 이 땅과 국민의 삶에 반사회적, 반윤리적 해악만을 끼친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좀더 안락한 터를 구하는 논리가 그 속에 담겨 있고, 생명 존중, 인륜적 효심 등과 같은 긍정적인 사상이 내포되고, 마을· 도읍지를 정하거나 하는, 우리 생활에 필요불급한 순기능을 다방면으로 풍수학이 담당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미신이었다면 우리의 의식 속에서 벌써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사진 : 용인시에 위치한 번암 채제공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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