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는 진천이 좋고, 죽어 묻히기는 용인이 좋다.'(生居鎭川死居龍 仁)란 말은 홀어미를 서로 모시고 살겠다며 두 아들이 효도 싸움을 벌인 데서 유래됐다. 그런데 이 말이 '용인에 묘지 명당이 많다'라는 뜻으로 와전돼 유명 정치인들의 부모 묘와 여러 재벌가의 선영을 위시해 묘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이런 용인 땅에 대를 이어 가문이 번창할 양택 명당이 지명으로 전해져 왔는데, 바로 용인 삼성 에버랜드 뒤편에 자리한 포곡면 가실리란 마을이다. 우리 조상들은 땅이 가진 성격과 지기(地氣)를 살펴 그와 부합된 지명을 지었는데, 가실(稼室)이란 '집을 심는다'라는 뜻으로, 곧 집을 짓고 살면 장수와 부귀를 누릴 복지라는 뜻이다.
이곳에는 현재 삼성 그룹의 인재를 키워 내는 삼성인력개발원과 동양 최대의 사립미술관인 호암미술관, 그리고 삼성의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살던 한옥과 그의 묘가 있다. 삼성 그룹에 있어서는 인재의 산실이고, 문화의 요람이며, 역사와 꿈이 서린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가실리는 한남정맥이 석성산에서 한 줄기 용맥을 북진시키고, 이 용맥이 동쪽의 경안천을 바라보며 둥글게 포물선을 그은 안쪽에 위치해 있다. 높은 산이 삼면을 병풍처럼 둘러친 사이로 동쪽만이 트인 형세인데, 굳게 닫힌 듯한 수구(水口)를 통해 안으로 들어서면, 들판이 넓게 펼쳐 지고 위쪽에는 둑을 막아 조성한 저수지가 큼직하다. 소위 '택리지'에서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정한 여러 조건 중 '지리'의 조건에 딱 맞는 길지다.
삼성이 이곳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의 황폐한 산야를 바라본 이병철 회장이 국토를 개발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밝힌 데서 비롯됐다.
토질 강우량 온·습도 등에서 국내 평균치에 해당하는 용인의 포곡면 일대가 시범장으로 선정됐다. 당시 가실리는 황폐한 야산으로 산 주인도 수천명에 달했고, 분묘도 많았으니, 450만평에 달하는 산야를 매입하려니 숱한 어려움이 따랐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이니 팔 수 없다는 사람도 있었고, 시가의 몇 배를 요구하는 사람도 있어 시일이 상당히 소요됐다. 비록 산지개발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힘을 얻기는 했어도, 현재까지도 매입하지 못한 땅이 있을 정도다. 호암관 왼쪽의 산자락에는 강원도 도관찰사를 지낸 용인 이씨의 조상 묘가 있다. 용인 이씨들은 이 묘가 명당에 들어선 덕택으로 후손이 복을 받았다고 믿었기 때문에, 온갖 회유와 설득에도 삼성이 끝내 매입하지 못한 땅으로 유명하다.
삼성 기적의 뿌리가 인재 제일의 정신에서 비롯됐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회장은 신입 사원을 뽑는 면접은 만사를 제쳐두고 참석했고, 성적보다는 진취성과 성실성을 참작해서 선발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떫은 감을 정성스레 말려서 단감을 만들듯이, 인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신념으로 '삼성사관학교'라 불리는 삼성인력개발원에 입소시켜 삼성 맨들을 길러냈다. 그 역할을 담당한 곳이 82년 개관된 호암관과 91년에 개관한 창조관이었다.
'ㄴ'자형의 호암관은 각이 분명해 남성적인 느낌을 주는 양(陽)의 건물이고, '○'자형의 창조관은 곡선으로 처리해 여성적인 음(陰)의 건물이다. 호암관은 양룡(養龍)이라 지기가 출중하고 좌향까지 자생향(自 生向)을 놓아 음양이 모두 길한 반면, 창조관은 풍수적으로 흉한 면이 있어 아쉽다.
창조관의 지맥은 목욕룡이라 수맥이 흐르고, 좌향도 잘못 놓아 양기가 우득우파(右得右破)로 빠져 음기가 매우 강하다. 그 결과 창조관 입구에 거대한 거북 석상을 배치해 잡귀나 사기(邪氣)의 침범을 막고자 했다.
하지만 위치가 잘못 놓여져 거북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또 '대문이 크면 흉하다'라고 하는데, 창조관은 중앙의 거대한 대문을 통해 인재의 기(氣)가 모두 새어 나간다. 하루빨리 풍수적 비보가 필요하 다.
조상의 예술 혼이 배어 있는 고미술품은 한민족의 유구한 얼과 찬란한 예술 문화의 집합체다. 이 회장은 평생 동안 수집한 고미술품을 보존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최신 시설을 갖춘 호암미술관을 지어 82년에 개관 했다. 미술관 터는 수집, 연구, 수장, 교육 기능이 충실히 이행되도록 땅의 성격이 맞아야 한다.
삼성은 서울 시내에는 마땅한 부지가 없자, 자연농원에서 제일 좋은 위치를 택해 정지작업에 들어갔다. 이곳은 북쪽에서 남진한 생기발랄한 용맥이 저수지를 만나며 지기를 응집한 곳이니, 풍수로 보면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형국이다. 목마른 말은 다른 생각없이 급히 물로 달려 드니, 이 기운 때문에 산기운이 발동해 복을 가져온다.
그런데 문제는 둑을 막아 인공적으로 저수지를 늘려 양기를 키운 점이다. 자연은 음양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변하는데, 양기를 갑자기 키우면 음인 땅이 몸살을 앓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나무를 심거나 숲을 조성해 강한 양기를 누르는 비보가 필요하다. 현재 이곳에 전통 정원인 '희원'(熙園)이 조성돼 무성한 숲이 저수지의 양기를 눌러 막았고, 옛 멋을 그대로 살린 정원이라 오래 머물도록 이끈다.
미술관 본관 건물 1층은 불국사의 백운교와 같은 아치형 돌계단으로 기단구조를 하고, 그 위에 청기와 단층건물을 얹어 2층을 만들었다. 오행으로 보면, 흰색의 돌 기단은 금(金)이고, 청기와 지붕은 목(木)이니 금극목(金剋木)에 해당되고, 주변 산세는 수성(水星)인데 평평한 지붕은 토성(土星)이라 이 역시 상생의 조화가 부족하다.
호암미술관의 왼쪽에는 이 회장이 생전에 살던 한옥과 묘가 있어 이 일대를 '삼성의 메카'라 부른다. 정면 9칸에 팔작지붕인 한옥은 한국 전통의 형상과 색, 그리고 선이 조화를 이뤄 아름답다. 하지만 집터는 용맥이 아닌 계곡에 자리해 생기가 왕성치 못하니, 지기를 키워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앞으로 호암미술관은 삼성의 역사가 진열될 '삼성역사관'이 돼 삼성이란 명문가의 가풍을 배우는 교육의 장으로 거듭 태어날 예정이다. 미술관은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서울 한남동으로 이전한다. 그 결과 '가실리'는 21세기 삼성그룹의 종가댁으로써 가풍이 흥한다는 지명유래에 부합된 새로운 명소로 재탄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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