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풍수지리(1993)』는 도안을 가진 최창조가 생기가 응집된 명당을 어떻게 찾고, 또 어떤 방법으로 생기를 느꼈는지 여러 곳을 답사한 형식으로 게재되었다. "풍수는 땅의 질서와 인간의 논리 사이의 합치점을 찾고자 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지혜다."["한국의 풍수지리" - p22] 라는 '학자'다운 말씀도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다.

  여기서 독자들은 최창조가 생기가 응집된 터를 잡으면서 풍수 이론을 전혀 적용하지 않고 나아가 하늘, 즉 천문에 대한 이야기를 빼버린 점을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안의 터잡기 예술은 《서울의 북악, 전남의 남악》이란 장만 읽으면 충분하다. 이 장은 최창조가 전남 도청의 터를 도안으로 물색하는 방법과 그렇게 해서 잡은 남악리에서 느낀 지기의 감회를 적고 있다.

  먼저 한반도의 형국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였다. 한반도의 모습은 대륙을 향해 줄기차게 기어 올라가는 거북이며, 제주도는 거북이가 낳은 황금 알이요, 전라도는 제주도를 낳은 생명의 근원인 모태 즉 자궁이라 규정한다. 타인이 어떤 지형을 물형론에 빗대어 설명하면 사기꾼이라고 몰아부치고, 그가 설명하면 제대로 된 풍수인가? 언젠가 최창조는 상주시 용유리를 와우형(臥牛形)의 명당이라 이름짓고는, 혈처는 소의 뱃 속이라 하였다.

   소의 뱃속. 그지없이 평안한 곳이다. 좀 답답하기는 해도 이보다 따뜻하고 안전한 데가 없다.

  황당한 논리이다. 물형론에서 혈처의 판단은 산천이 힘을 써 그 기운이 밖으로 표출된 곳을 가리킨다. 누워 있는 소의 형국이라면 혈처는 꼬리나 입 부분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파리를 쫓으려고 꼬리에 힘을 주거나, 되새김질을 하려면 입의 근육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뱃 속이 혈처라고 했으니, 아마도 땅 속 깊은 곳에 지상 낙원이 있는 모양이다.

  각설하고, 전라도의 형국을 황금 알을 품은 금구몰니형(金龜沒泥形)이라 본 그는 그런 땅이 왜곡과 편견 때문에 역사적으로 불이익을 당했다며 분개한다. 그런 다음 전남 도청이 옮겨갈 적지를 찾아 나섰다. 지도를 편 그는 먼저 무안의 승달산(僧達山)과 목포의 유달산(儒達山)에 주목한다. 승(僧)은 불(佛)이니 전라도 땅은 유불(儒佛)이 앉아 있는 땅이며, 이제는 유불선(儒佛仙) 삼도(三道)가 서로 만나는 터만 찾으면 그만이다. 문제는 전라도 땅에 선달산(仙達山)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찾은 산이 해발 160미터에 불과한 영암의 선황산(仙皇山)이다. 유불선과 관련된 3개의 산을 찾았으니 이제 어떻게 도청 자리를 잡을까?

   세 산의 정상을 삼각형의 꼭지점으로 하여 선을 그으면 삼각형이 생기고, 그 안쪽이 명당이 된다. 이곳이 바로 모든 것을 융화, 회통케 할 천하의 대지명당이라고 보는 것이 저자의 풍수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다. 그리고 혈처는 삼각형의 세 중선이 합치되는 중심이며, 바로 무안군 삼향면 남악리이다.["한국의 풍수지리" - p41]

  기상천외한 발상이며, 신묘한 터잡기 예술이다. 그의 터 잡기 예술에는 좁쌀만큼도 풍수 이론이 적용되지 않았고, 그것을 그는 현대적 해석이라고 덧붙이기에 이른다. '풍수의 현대적 해석'이란 과연 무슨 뜻일까? 실제로 그는 남악리 인근에 오룡산(225m)이 있어 그곳은 다섯 용이 구슬을 다투다 되돌아오는 땅이니 승지(勝地)이고, 어머니의 자궁[모태(母胎)]은 떠들썩함을 즐겨 하지 않으니 행정, 학술을 위주로 하는 소도시로 가꾸는 것이 좋겠다는 그럴듯한 주석을 덧붙였고, 대 명당임을 증명하는 품질보증서를 써 주었다.

  남악리 마을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낯선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에게 스스럼 없이 조카딸이란 호칭을 썼다. 이장 일 보는 아들이 잠깐 나갔으니 기다렸다가 약주 한 잔 하고 가라는 말도 했다. 나는 그분에게서 장모님의 얼굴을 보았다. 삼교회통(三敎會通)의 터전임을 웅변해 주는 순간들이었다.["한국의 풍수지리" - p42]

  필자는 절대로 최창조 풍수론 중에서 지엽말단적인 것만 문제삼아 본질을 왜곡할 마음이 없다. 그보다는 그 풍수의 본 바탕과 본질에 대하여 의문이 많고, '약주 한 잔 하고 가라'는 인정에 '천하의 대 명당'이라 확신하는 허황됨을 직시할 뿐이다. 그렇지만 최창조는 글만 쓰면 책으로 변해 세상의 지가(紙價)를 높이고, 답사기까지 일간지에 게재되는, 당대의 영향력 있는 풍수학자이다. 그는 이미 공인이고, 공인이란 항상 검증되어야 한다.